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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패지관 (전주객사)

풍패지관 사진

都市도시문화

만남의 장소, 풍패지관
풍패지관(전주객사)은 조선 초 전주부성을 창건할 때 같이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 뒤 성종3년(1473)에 전주부윤(副尹) 조근(趙瑾)이 전주사고(全州史庫)를 창설할 때 남은 재력으로 객사를 개축했다는 기록이 있다. 전라감영의 권위와 명예를 상징하는 매우 중요한 뜻을 지닌 보물로, 주관 정면에는 풍패지관이라는 유려한 초서체의 대형 현판이 걸려 있다. 명나라 재상 주지번의 글씨로 전해지는데, 여기서 풍패란 한고조의 고향지명으로, 전주가 바로 조선왕조의 발상지라는 높임이 담겨져 있다. 도심 한복판에서 만나게 되는 풍패지관(전주객사)은 뜻밖의 여유를 갖게 한다.
풍패지관 사진
  • 객사는 고려조선 시대에 고을에 설치했던 객관으로 출장을 나온 관원이나 외국 사신의 숙소로도 사용하였다. 조선시대에 와서 주전(본관)에 전패를 안치하고 국왕에게 배례를 올렸으며, 국가 경조시에는 민관이 합동으로 의식을 거행하거나 외객을 접대할 때는 연회장으로 사용되었다. 원래는 주관과 동서 익헌·맹청·무신사 등 많은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주관과 서익헌과 수직사만 남아 있다. 현재 초석만 남아 있는 동익헌은 서익헌과 규모가 같으나 도로확장으로 인해 1칸이 부족하다. 객사의 정문은 주관을 정면하여 내삼문·중삼문·외삼문이 있었으나 원래의 내삼문 안쪽으로 경역이 축소되어 있다. 수십 년간 전주시민의 만남의 장소였던 전북 전주시 완산구 중앙동의 전주객사(全州客舍)가 고유 이름인 풍패지관(豊沛之館)으로 바뀌었다. 관사 또는 객관으로 불린 객사는 고려 이후 각 고을에 설치되었는데 객사가 전주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데다 일제강점기와

근·현대를 거치면서 명칭이 왜곡돼 고유 이름인 '풍패지관'으로 되돌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풍패'란 한나라를 건국했던 유방(劉邦)의 고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건국자의 본향을 일컫는데, 이를 본따 전주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본향이란 의미로 '풍패지향'이라 했으며 전주 객사는 '풍패지관'이라고 칭하게 되었다. 이제부터는 약속을 정할 때 고유 이름인 "풍패지관에서 만나자"고 하자.

객사는 현재 만남과 휴식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으니 들러 잠깐의 여유를 가져보는 것도 좋겠다. 어두워진 후에는 시내 중심가에 <풍패지관> 이라는 현판이 걸린 객사의 야경을 만날 수 있으며 그 옆에는 전주의 중심 거리이자 젊음의 거리인 걷고 싶은 거리에서 루미나리에의 화려한 불빛을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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