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 천만그루

주요 서비스 메뉴 분야별
정보

본문내용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URL 주소복사
  • 오류신고
  • 페이지 인쇄기능

보도자료

  • 국가정보원 지침에 의거 최근 증가하는 홈페이지 해킹에 대비하고자 본문 또는 첨부글에 특수문자 포함 시 게시글 등록이 자동으로 차단됩니다. (특수문자 : ; : | + - = < > 등)
  • 글 작성시 교차 스크립트 오류가 발생하시는 분은 아래 이미지 파일을 참고하셔서 인터넷 설정을 변경해주세요.
    교차 스크립트 적용 방법
자유게시판 제목, 작성자, 등록일로 구성된 표
제목 전국 최초로 조선왕조실록 포쇄 재현
작성부서 대외협력담당관 등록일 2013-10-17

※ 포쇄(曝曬) : 습기를 제거하여 충해를 막을 수 있도록 책을 말리는 것

 

1. 19세기 박정향의 박학사포쇄일기를 기준으로 재현

○ 전주사고에서 진행된 조선왕조실록 포쇄는 19세기를 기준으로 삼았다. 전주사고가 만들어진 것은 조선전기이나 자료가 남아있지 않아 현존자료인 박정향의 ‘박학사포쇄일기’가 남아있는 시점을 기준으로 삼았다.

 

○ 박정향은 1871년(고종 8) 별검춘추(別檢春秋, 사관 역임자 중 청요직에 있는 자 가운데서 특별히 선임하는 직)로 적상산사고와 태백산사고 포쇄를 수행한 자로 사고에 보관되어 있는 실록을 포쇄하면서 포쇄사관 선임, 사관일행 구성, 포쇄인원 및 장소, 소요물품, 절차 및 방법 등에 대해 자세히 기록해 놓았다.

 

○ 따라서 이러한 자료를 토대로 전문가 고증회의를 거쳐 조선왕조실록 포쇄 재현행사 계획을 마련하게 되었다.


2. 조선왕조실록 포쇄(曝曬) 재현행사

○ 조선왕조실록 포쇄 재현은 10월 19일(토) 오후 2시에 오목대, 태조로, 경기전 내 전주사고 일원에서 진행된다.

 

○ 조선왕조실록 포쇄는 조선시대 외사고(外史庫)에서 3년에 1차례씩 진행된 전주사고에 보관된 실록을 말리는 행사이다.

 

○ 사고에 보관된 실록을 말리는 이유는 습기로 인한 조선왕조실록의 손상을 막기 위해 중앙에서 직접 사관을 파견하여 실시하였다.

 

○ 포쇄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실록을 열람하기도 하였다. 국왕조차도 실록을 볼 수 없었음으로 이를 발설해서는 안됐다. 때문에 실록을 포쇄할 때는 글을 모르는 사람을 동원했다는 말도 있다.

 

○ 이러한 고증에 따라 오목대에서 태조로를 따라 경기전 앞까지 길놀이 형식의 사관행렬을 재현하고, 경기전 전주사고 앞에서 조선시대 조선왕조실록 포쇄를 재현한다.

 

○ 포쇄절차는 우선 전주사고 앞에서 4배한 후 사관일행이 사고 안에 들어가 실록궤의 이상유무를 점검하고, 교생들을 시켜서 실록궤를 사고 밖으로 꺼낸다.

 

○ 이후 실록궤에서 조선왕조실록을 꺼내서 말리는 작업을 시행하고, 말리는 작업이 끝나면 천궁 및 창포가루를 실록궤에 넣고 초주지 및 붉은색 보자기로 실록을 싸고 실록궤에 넣는다.

 

○ 실록궤에 조선왕조실록을 넣으면 자물쇠를 채우고 사관이 수결(手決)한 종이를 밀봉하고, 사고에 실록궤를 넣는다. 그리고 조선왕조실록 포쇄에 대한 결과보고서인 형지안(形止案)을 작성한다.

 

○ 형지안 작성이 끝나면 전주사고 앞에서 포쇄인원들이 4배한다. 이로써 조선왕조실록 포쇄를 마치게 된다.

 

○ 조선왕조실록 포쇄는 전국 최초로 진행되는 행사여서 그동안 역사기록에서만 접할 수 있었던 광경을 직접 볼 수 있는 행사여서 기대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 송하진 전주시장은 ‘전주는 조선왕조실록을 지켜낸 왕실 기록을 지켜낸 역사의 도시이자, 감영목판이나 한글고전소설 등 완판본이라는 책을 찍어낸 출판의 도시이다‘면서 ’특히 조선왕조실록 포쇄 재현행사는 전국 최초로 재현되는 행사임으로 앞으로 기록문화의 도시 전주를 만들어 가는데 대표적인 콘텐츠가 될 것이다‘라고 전했다.


<참고자료 1>
조선왕조실록 포쇄 재현 고증

고증시기 : 19세기
   ○ 조선왕조실록 포쇄에 관하여 그 절차와 의례를 상세하게 기록한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는데 1871년 박정향이 별겸춘추로 포쇄관에 임용되어 무주 적상산사고와 봉화 태백산사고를 포쇄하면서 당시 상황을 상세하게 기록해 놓은 일지가 있음(박학사포쇄일기)

 

포쇄 재현행사의 의미
   ○ 전주사고는 임진왜란 때 조선왕조실록을 유일하게 지켜낸 곳이며, 이런 역사지킴이의 전통과 역사성을 대내외에 알림
   ○ 포쇄 재현행사는 처음 열리는 것으로 향후 전주사고의 역사성을 더해져 전주의 문화콘텐츠로 자리할 수 있음

 

사관일행 
   ○ 사관을 포함하여 예문관 서리 청직 사령 등 10여명 정도이며 지방에서는 지방관 일행이 도와 군현의 경계에서 사관 행렬을 맞이함

 

포쇄장 풍경
   ○ 중앙의 사관일행, 지방관 일행, 식사를 담당하는 각 군현의 출참인원 등 포쇄에 관련된 인원이 수백명에 달함
   ○ 떡장사, 술장수, 엿장수 등 장사꾼과 구경꾼 등 수백명이 포쇄장에 몰려 장사장을 이루며, 일종의 축제의 장이 열림

 

포쇄절차
   ○ 사관이 사고에 도착하면 4배하고, 사고의 이상유무를 살핌
   ○ 실록을 담은 궤에서 실록을 꺼내 바람을 쐬고 햇빛에 말림
   ○ 포쇄가 끝나면 실록을 궤에 담아 사고에 다시 봉안하는데 이 때 궤에 습기제거와 방충을 위해 창포가루와 천궁가루를 담은 자루를 넣고 실록은 붉은 보자기에 싸서 넣음
   ○ 사관은 포쇄를 하면서 실록의 내용을 살펴보기도 하였으나 이는 발설해서는 안됨, 실록은 임금도 볼 수 없었음
   ○ 사고문은 사관만이 개폐할 수 있음

 

 

<자료제공부서 및 문의처 : 전주시 전통문화과, 281-2166>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현재 페이지의 내용 및 사용편의성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
평가결과보기
소셜계정으로 로그인하시면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

(140/140by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