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선사시대의 전주
- 구석기문화는 송천동 사근유적과 효자동 봉곡 유적이 있고 청동기시대의 유적과 유물이 풍부하게 발견되고 있습니다.
-
- 마한시대 소국가의 탄생과 백제의 전라도 병합(기원전 1세기~기원후 3세기)
- 마한·백제시대 전주는 중심지에서 비켜서 있었지만, 만경강의 본류와 지류를 따라 충적지와 구릉지대가 발달한 자연환경과 지정학적인 이점을 바탕으로 중심지로의 성장을 예고하고 있었습니다.
-
- 후백제의 왕도 전주
- 견훤은 900년 전주에‘후백제’를 세웠습니다. 전주성(견훤성·지방 기념물 제44호)은 승암산에서 기린봉 능선을 타고 북쪽으로 흐르는 구릉지대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걸쳐 있습니다.
-
- 고려시대
- 고려는 성종때(983년) 12목체제를 마련했는데 전라도에는 전주목과 나주목이 설치되었고, 현종때(1018년) 5도, 양계체제로 개편되면서, 전주권과 나주권이 합쳐져 전라도가 되었습니다.
-
- 조선왕조의 발상지
- 전주는 태조 이성계의 본향. 조선은 건국 후 전주에 태조어진을 모시고 경기전이라하여, 전주가 왕실의 뿌리임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
- 전라감영이 소재했던 호남제일성
- 전주는 전라도를 총괄하는 전라감영의 수부(首府)였습니다. 한강이남에서 가장 큰 성이였던 전주부성은 객사가 중심에 위치하고 그 앞쪽으로 서편에 전라 감영, 동편에 전주부영이 자리했습니다. 영조10년(1734) 감사 조현명이 전주성을 손질하고 4대문을 다시 쌓았습니다.
-
- 조선왕조실록을 지켜낸 역사지킴이
- 조선은 서울 춘추관을 비롯해 충주, 성주, 전주 등 4대 사고에《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였는데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탔으나 전주사고본만은 오희길, 손홍록, 안의 등에 의해 실록과 태조어진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
- 조선의 3대 도시 전주
- 전주는 호남 제일의 곡창지대 수부로 물산이 풍요롭기가 한양을 방불케 하였습니다. 전주가 호수로는 한양, 평양에 이어 3번째이고, 인구수는 한양, 평양, 의주, 충주에 이어 5번째 였습니다.
-
- 조선의 문화예술을 선도한 예향
- 전주는 조선후기 대사습놀이가 열렸던 소리의 고장이며, 음식문화가 발전한 맛의 고장입니다. 한지의 본가(本家)이며, 완판본이라는 이름으로 한양과 함께 출판문화를 주도했던 기록문화의 도시였습니다.
-
- 전주성을 수호한 우국충절
- 임진왜란(1592), 전주는 왜군이 들어오는 두 길목 웅치와 이치에서 전주성을 지켰습니다. 정유재란(1597)때는 전주성이 왜군에게 점령되지만, 왜란초 전주성과 호남수호는 7년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 소셜계정으로 로그인하시면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
-
(140/140by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