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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문화재

    • 천주교 순교자 묘

    • 17세기 초 천주교는 중국에서 들여온 교회 서적을 통하여 한국에 처음 소개되어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 연구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유교 이외의 어떤 종교나 학문도 엄격히 금지되었던 시절이어서 1886년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기 전까지 혹독한 박해로 10,000명 이상이..
    • 지정날짜 1984.09.20
    • 지정번호 전라북도 기념물 제 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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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소개

17세기 초 천주교는 중국에서 들여온 교회 서적을 통하여 한국에 처음 소개되어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 연구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유교 이외의 어떤 종교나 학문도 엄격히 금지되었던 시절이어서 1886년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기 전까지 혹독한 박해로 10,000명 이상이 순교했다. 한국 천주교회는 외국 선교사에 의해 전래된 것이 아니라 한국 사람들의 자발적인 노력에 의하여 세워진 교회 역사상 유례없는 사례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전주는 박해를 피해 피신해 온 신자들이 많았으며 한국 최초의 순교자 역시 전주지방 출신이었다. 이곳 전주는 한국 최초의 자치 교구이다.


1790년에 박해가 한창 심할 때, 전주의 한 동정부부(童貞夫婦)가 순교하였다. 유항검(柳恒儉)의 아들 종철(鍾喆)과 그의 아내인 이윤하(李潤夏)의 딸 이누갈다(유혜=일명 順伊)이다. 유종철은 순조 2년(1802)에 전주 형옥(刑獄)에서 교살(絞殺)이라는 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그의 아내 이누갈다는 남편이 옥중 교살된 지 나흘만에 벽동(碧潼;지금의 평북 벽동군) 관비로 가라는 선고가 내려졌다. 이누갈다는 관리에게 죽여줄 것을 요청하면서 벽동에 가는 것을 한사코 거부하였다. 그 후 곧바로 숲정이 형장으로 끌려가 처형되었다. 1937년에 구(具)마르시노 신부는 이들 동정부부와 유항검의 처 신희, 유관검의 처 이육희, 유항검의 장조카 유중성(강주도령),그리고 유종철의 동생 문철의 시신을 이서에서 이 곳 승암산(치명자 성지 혹은 중바위)으로 큰십자가를 세워 그 신앙심을 기리고 있다. 전주교구에서는 이 곳을 새로이 단장하여 묘 앞에는 제대를 세우고 지하에는 성당을 지었다.

기본정보

    ■ 관리자 : 전주 천주교회재단

    ■ 시 대 : 1937년

    ■ 규 모 : 280제곱미터

갤러리

제4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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