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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演역사문화
뒤에 오목대를 나는 매양 오른다.
허술한 주역각(駐驛閣)은 외로이 서 있으며 줄비한 몇 만 가옥이 내려다 다 보인다.
그 옆의 자만동(滋蔓洞)은 목조의 고적지요.
그 뒤의 발산(鉢山)은 이르노니 발이산(發李山)과연 그 오백년 왕기가 여기 결인(結因) 하였던가.
-이병기 시인의 시 '梧木臺(오목대)'

- 오목대는 이성계가 남원 운봉 황산에서 발호하던 왜구 아지발도(阿只抜都)의 무리를 정벌하고, 승전고를 울리며 개선하여 개경으로 돌아갈 때 전주의 이곳에서 야연(夜宴)을 베풀었다는 곳이다. 여기에서 이성계는 한나라를 건국한 유방이 불렀다는 대풍가를 읊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즉 자신의 새로운 나라를 세우겠다는 야심을 넌지시 비쳤다. 오목대와 이목대에는 고종의 친필로 새긴 비석이 세워져 있고, 비각이 건립되어 있다. 조선왕조의 몰락을 거부하고 전통 왕조의 재건을 강건히 하고자 했던 고종황제가 1900년 오목대에 '태조고황제주필유지'라는 비와 비각을 세운 것도 조선의 본향으로서 전주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대변한다.
- 태조께서 머무셨던 유적지, 조선의 임금으로 나라의 문을 닫는 황제가 그 나라의 문을 열었던 조상의 웅보 머무신 자리에 한 점 필묵을 피처럼 눈물처럼 떨구어 점점이 새긴 글귀가, 언덕 아래 자만동(滋蔓洞) 밥 짓는 저녁연기 쏘이면서, 푸른 비면(碑面) 자욱토록 이끼가 돋고 있다. 大風起兮雲飛揚 (대풍기혜운비양) 센바람 부니 구름이 높날리네 威加海內兮歸故鄕 (위가해내혜귀고향) 위엄을 해내에 더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네 安得猛士兮守四方 (안득맹사혜수사방) 어떻게 용맹한 군사들을 얻어 사방을 지킬까? -'대풍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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