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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 4대문 중 유일하게 남은 풍남문(豊南門)
- 고려 공양왕 원년인 서기 1388년 전라관찰사 최유경에 의해 창건된 풍남문은 조선의 수도인 한성부의 숭례문 (남대문)과 같은 형태의 특징을 보인다. 또한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황토현에서 대승을 거둔 동학농민군이 관군과의 치열한 격전장이기도 했다. 풍남문과 지척에 있는 전동성당은 풍남문의 성벽을 헐어 낸 돌로 성당의 주춧돌을 세웠다고 한다. 옛 전주부성의 남쪽 문인 풍남문은 전주읍성의 동서남북 네 곳의 성문 가운데 유일하게 보존되고 있는 보물 제308호이다.

- 1338년 축성한 이후 1597년(선조 30년) 정유재란 (丁酉再亂)으로 성곽과 성문이 모두 파괴되어 1734년(영조 10년) 관찰사 조현명이 성곽을 중건하고 남문의 이름을 명견루(明見樓)라 하였다. 그러나 1767년(영조 43년)의 대화재로 불타 이듬해 관찰사 홍낙인이 재건하고 남문을 풍남문(豊南門)으로, 서문을 패서문(沛西門)이라 하였다.
- 그 후 종각, 포루 등이 일부 헐리고 지면이 묻히는 등 원형이 훼손되었으나 1978년부터 3년간의 보수 공사로 옛 모습을 되찾았다. '풍남문'이란 이름은 중국을 통일한 한 고조 유방의 고향인 풍패(豊沛)에 빗대어 태조 이성계의 관향인 전주를 풍패향이라 부른 것에 기인한다. 전주부성 가운데 남쪽 성문을 풍패향 전주의 남문이란 뜻으로 풍남문이라 하였다. 풍남문은 1층은 앞면 3칸, 옆면 3칸이며, 2층은 앞면 3칸, 옆면 1칸으로 문루의 1층에 앞뒤로 4개씩 세워진 높은 기둥이 그대로 위로 이어져 2층의 변두리기둥이 되도록 하였다. 이런 기둥 배치는 우리나라 문루 건축에서는 예가 많지 않아, 풍남문은 건축적인 가치도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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