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껏 붓을 가누어 조신해 그은 획이 그만 비뚤어버린 때
저는 우선 그 부근의 다른 획의 위치나 모양을 바꾸어서
이것은 물론 지우거나 개칠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획과 획의 '관계' 속에 있다고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획도 흡사 사람과 같아서 독존하지 못하는 '반쪽'인듯합니다.
마찬가지로 한 '자'가 잘못된 때는 그 다음 자 또는 다음다음자로써 그 결함을 보상하려고 합니다.
한 '연'의 실수는 다른 연의 구성으로써 감싸려 합니다.
그리하여 어쩌면 잘못과 실수의 누적으로 이루어진,
실패와 보상과 결함과 사과와 노력들이 점철된,
그러기에 더 애착이 가는, 한 폭의 글을 얻게 됩니다.
획, 자, 행, 연 들이 대소, 강약, 태세, 지속, 농담 등의
여러가지 형태로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고 양보하며 실수와 결함을 감싸주며 간신히 이룩한 성취입니다.
그중 한 자, 한 획이라도 그 생김생김이 그렇지 않았더라면 와르르 얼개가 전부 무너질 뻔한, 심지어 낙관까지도 전체 속에 융화되어 균형에 한 몫 참여하고 있을 정도의, 그 피가 통할 듯 농밀한 '상호연계'와 '통일' 속에서 이윽고 묵과 여백. 흑과 백이 이루는 대립과 조화, 그 '대립과 조화' 그것의 통일이 창출해 내는 드높은 '질'이 가능할 것입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_서도의 관계론, 101페이지 / 신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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