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1 - flower jeou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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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의 신원(伸寃)이 이뤄졌고, 비로소 혁명 참여자와 유족들의 명예가 회
복될 수 있었다. 동학농민혁명은 전북을 넘어 한민족의 자랑이다. 프랑스
혁명·중국태평천국운동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민중들의 자발적인 혁명
으로 전북에서 불씨를 지펴 전국에 떨친 혁명의 심장부에 전주와 이 땅의
선조들이 있었다. 동학농민혁명의 장장(章章)한 기운은 계속 이어진다.
민주주의 땅, 들불로 번진 촛불의 꿈
1960년 4·19혁명에 앞서 이승만 정권을 규탄하는 대학생들의 첫 시위가
전주에서 있었다. 전북대 4·4운동. 그해 4월 4일 700여 명의 전북대 학생
들은 캠퍼스에서 독재 정치 타도와 3·15부정선거의 재선거를 요구하며 시
위를 벌였다. 이는 4·19혁명의 도화선이었다.
1964년 3월 한·일 외교 농상회담 반대 데모가 전국적으로 벌어졌을 때도
전주의 대학생과 청소년은 거리로 나왔다. 전북대학교와 전주고등학교
학생 수백 명은 ‘굴욕적인 외교 회담 배격하자’, ‘매국적인 한·일 회담
절대 반대’등 플래카드를 들고 시내를 누볐다. 정부는 ‘국가 이익을 위한
절실한 외교였다’는 궁색한 변명을 내놓았지만, 성난 시민과 야당 의원
까지 합세해 경기전을 비롯해 전주 곳곳에서 한·일 외교 반대 집회를
멈추지 않았다.
유신 치하 첫 번째 성직자 구속 사건도 전주에서 벌어진 일이다. 197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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