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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3일 밤 11시 전주남문교회. 수요예배 후 신도들과 교회 강단에서

               기도하던 한 목사가 강제로 밀고 들어온 경찰에 연행됐다. 한 시간 후인

               12시에 비상계엄이 해제될 예정이어서 그를 구속하지 못할 것을 염려한
               박정희 정권은 교회를 짓밟으면서까지 그를 연행한 것이다. 성직자이자 민

               주화 투사로 유신·군사 독재정권에 치열하게 맞서 싸운 은명기(1921~1996)

               목사다. 수배 학생을 숨겨주거나 구국기도회와 설교를 통해 유신 독재

               를 비판했기에 그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은명기의 혐의는 ‘60년 4

               월 11일 이래 남문교회 목사로 재직하면서 71년 4월 민주수호전북협의
               회 결성준비위원 등을 지냈다. 71년 11월 19일 남문교회 청년회 명의로 함

               석헌, 장준하를 초청해 시국강연회를 열었다. 10월 유신을 위한 개헌안

               과 계엄령 선포에 반대했다. 10월 유신은 국민투표로 통과될 것이며 비상
               계엄령은 남북통일을 구실 삼아 정권 연장을 꾀하려는 하나의 조치라고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했다’는 것이었다. 1973년 5월 일본 잡지 『세계』와

               뉴욕타임스지에 이 사건이 보도되면서 은명기와 유신 정권의 종교 탄압이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민주주의 꽃을 피우기 위해 노력하고 희생했던 여린 목숨은 1980년 민주
               항쟁으로 이어진다. 1980년 5월의 첫 희생자는 전북대 농학과 2학년 이세

               종(1959~1980)이다. 밤샘 농성하는 선배들을 돕기 위해 유인물 배포 활동

               을 하고 돌아온 이세종은 5월 18일 새벽 1시 전북대학교 교정으로 진입한
               계엄군에 의해 학생관 옥상으로 쫓기다 의문의 추락사를 당한다.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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