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7 - flower jeou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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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와 상생을 향한 전주의 마음










            전주는 길손을 거부하지 않았다. 종교에 대한 이해와 포용은 유달리

            넓었다. 전주를 중심으로 전북은 초기 천주교 신자들의 도피처였고, 전주는

            최초의 순교자를 낸 곳이다. 순교자들이 처형장의 이슬로 맺히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당당했던 것은 자신과 자신을 믿는 이들의
            소중함을 지극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자신을 희생하며 다른 이들에게

            종교를 전파한 것도, 박해자들의 무지를 탓하지 않고 오히려 이들의 구원을

            빌었던 것도 이러한 이유다. 한국전쟁 때 서울과 황해도 지역 피난민들이
            전주와 군산 등을 가장 인심 좋은 고장으로 꼽으며 정착했던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고수레’와 ‘아심찮다’는 전주의 마음




            쌀 한 톨, 사과 한 알은 그냥 얻어지지 않는다. 곡식 한 톨, 과일 한 알

            에도 봄바람과 여름 소나기, 가을 풀벌레 소리, 차고 명석한 겨울 하늘

            이 고루고루 스며 있다. 자연이 베풀어준 풍요의 미덕. 그래서 우리는
            자연에서 얻은 것들을 다시 자연과 나누며 탐욕을 경계했다. 가난한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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