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어진박물관

어진실

어진실

조선시대 임금의 초상화 7점
[세종, 단종, 영조, 정조, 철종, 고종, 순종]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御眞室
세종어진
세종어진 世宗御眞 Portrait of King Sejong 현대/비단에 채색/114×164㎝/표준영정모사

세종어진은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의 세종어진은 김기창화백이 추정하여 그린 것으로 1973년 국가 표준영정으로 공인되었습니다. 어진박물관 소장 세종어진은 김영철화백이 표준영정을 모사한 것입니다.

세종은 한글을 창제한 위대한 군주입니다. 성군으로 칭송되는 세종은 유교정치의 기틀을 확립하고, 공법(貢法)을 시행하는 등 각종 제도를 정비하였으며, 문화와 과학기술을 크게 발전시켰습니다. 또한 세종은 4군 6진을 개척하여 국토를 확장하였습니다.

단종어진
단종어진 端宗御眞 Portrait of King Danjong 현대/비단에 채색/135×276㎝/표준영정복제

단종어진은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의 단종어진은 권오창 화백이 실록에 나타난 단종의 용모기록과 태조어진의 용안, 세조어진 초본 용안을 참조해 추정하여 그린 것으로 2021년 국가 표준영정으로 공인되었습니다. 어진실의 단종어진은 표준영정을 촬영한 사진입니다.

단종은 문종의 아들로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1457년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상왕이 되었습니다. 이후 영월 청령포로 유배되었다가 그해 10월 사약을 받고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영조어진
영조어진 英祖御眞 Portrait of King Yeongjo 1900년/비단에채색/83x203cm/보물제932호

1744년 영조 51세 때 사대부 화가 조영석 등이 그린 어진을 1900년(광무4년) 조석진·채용신 등이 모사한 영조 반신상입니다. 현재 어진실에 있는 영조어진은 1900년의 반신상 어진을 토대로 하여 전신상으로 모사한 것입니다.

영조는 31세에 왕위에 올라 83세까지 장수한 최장수 왕이며 재위기간(52년)이 가장 길었던 왕입니다. 영조는 탕평책(蕩平策)을 전개하고, 균역법을 시행하였으며, 청계천을 준설하였습니다. 영조는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인 비정한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경기전 뒤에 위치한 조경묘는 영조 47년(1771)에 창건한 것입니다.

정조어진
정조어진 正祖御眞 Portrait of King Jeongjo 현대/비단에 채색/114×164㎝/표준영정복제

정조어진은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의 정조어진은 이길범화백이 추정하여 그린 것으로 1989년 국가 표준영정으로 공인되었습니다. 여기 어진실의 정조어진은 표준영정을 촬영한 사진입니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아들로 조선왕조의 중흥을 꾀한 군주입니다. 정조는 규장각을 설치해 학문을 발전시켰으며, 탕평정치를 전개해 붕당의 폐단을 해소하고, 왕권을 강화해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려는 큰 포부를 갖고 화성을 축조하여 천도를 시도하기도 하였습니다.

철종어진
철종어진 哲宗御眞 Portrait of King Cheoljong 2016년/비단에 채색/202x107cm/이철규 모사

철종어진(보물 1492호)은 철종이 31세 되던 1861년(철종 12)에 그린 것입니다.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이안했다가 1954년 화재로 오른쪽이 1/3쯤 소실된 것을 복원하였습니다. 융복(군복) 차림이며, 초상화에서 보기 드문 손의 형태를 볼 수 있다. 오른손에 무관의 지휘봉인 등채를 잡고 왼손 엄지에는 활시위를 당길 때 사용하는 깍지를 끼고 있다. 용모에 순수한 인품이 반영되어 있으며, 눈썹이 짙고 쌍꺼풀이 진 동그란 눈에 눈동자가 안으로 모여 있습니다.

철종은 사도세자의 증손자로 강화도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다가 1849년 19세에 즉위하였습니다. 강화도령으로 불리며 안동김씨 세도정치 속에서 정치를 바로 잡지 못한 채 1863년(철종 14) 33세로 병사하였습니다.

고종어진
고종어진 高宗御眞 Portrait of Emperor Gojong 현대/비단에 채색/114×164㎝

2001년 권오창화백이 사진을 보고 모사한 고종어진입니다.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에 올랐으므로, 이전의 조선 왕들과 달리 황제복인 황룡포 차림입니다.

신정왕후(조대비)는 안동김씨 세력을 견제하기 위하여 흥선대원군과 손을 잡고 그 둘째 아들로 왕위를 잇게 하였습니다. 그가 고종황제입니다. 고종은 1897년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황제를 칭했으며, 연호를 광무라고 하였습니다. 고종은 일본에 의해 외교권이 박탈당하고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한 것이 문제가 되어 고종은 일본에 의해 외교권이 박탈당하고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한 것이 문제가 되어 폐위되었습니다. 1919년 승하하였으며, 고종 독살설은 3.1운동의 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순종어진
순종어진 純宗御眞 Portrait of Emperor Sunjong 현대/비단에 채색/114×164㎝

2001년 권오창화백이 사진을 보고 모사한 순종어진입니다. 면류관을 쓰고 십이장복을 입은 대례복 차림입니다. 장복(곤복)은 의례를 행할 때 착용하는 것으로 황제는 십이장복, 왕은 구장복입니다. 십이장복이란 명칭은 옷에 들어가는 문양의 수가 12가지라는 뜻입니다.

순종황제는 고종황제와 명성황후의 둘째 아들로 고종의 뒤를 이어 1907년 황제로 즉위하였습니다. 1910년 조선왕조가 몰락하면서 일제에 의해 ‘이왕(李王)’으로 강등되는 등 수모를 겪다가 1926년 승하하였습니다. 순종 장례날인 6월 10일을 기해 독립을 외치는 만세운동이 일어났습니다.